정남향에 커다란 창을 가지고 있을뿐 아니라 꽤 높은 층에 있기 때문인지 새로 얻은 집은 전에 없이 볕이 잘 든다.
해질녘 쇼파끝에 덩그러니 앉아서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진 창틀의 그림자와 반쯤 말라 죽어가는것 같은 이레카 야자화분위로 삐죽 솟은 잎의 얼금얼금한 그림자가 거실 깊숙히 미끄러져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본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바닥의 긴 타일을 눈금삼아 그림자가 얼마나 드리우는지 셈 해볼 겨를도 없이 해는 져버리고 컴컴해진 거실 벽을 짚고 일어서 나는 불을 켠다. 서울에선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여기서 내가 보는 겨울녘 노을은 유난히 더 붉고, 뜨겁고, 그 속엔 애잔함 축축하게 깃들어 있다.
내 나이를 한손으로도 꼽을 수 있을만큼 어려서 기억조차 희미해진 어린시절의 먼 과거로부터 이른 사춘기에 접어들어 더는 집밖의 어두운 골목길이 무섭지 않은 순간이 올 때까지 나는 이렇게 바닥에 일렁이는 그림자를 몇시간씩 내려다 보며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서 돌아와서 밀어젖히기도 힘들정도로 무거운 인디고색 철제대문을 목에건 열쇠로 겨우 따고, 낡아서 끼익대는 얄팍한 알루미늄 새시의 현관을 지나면 텅 빈 집이 나를 반겼다. 엄마가 출근전에 겨우 챙겨놓은 >작은 소반에 수저를 얹어 볕이 가장 잘 드는 거실 끝에 옮겨놓고, 우뭇가사리가 꽉 들어차 있는 것만 같은 먹먹한 공간속에 우두커니 나를 앉혀두고 그림자를 보는 놀이를 했다.
그림자 놀이는 예컨대 이런것이었다. 해가 짧아지는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바닥에 깔린 복잡한 아라베스크 무늬의 주황색 카펫속 한땀 한땀 수놓아진 알 수 없는 프랙탈 패턴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고, 봄부터 늦여름까지는 흰 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강렬한 햇볕 속 일렁이는 아지랑이 속 희붐한 입자들을 세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겹거나 눈이 따가우면 잠깐 책을 펼쳐 숙제를 하기도 하고, 저금통 밑의 검은 고무가 다 헤질때까지 저금통을 열고 닫으며 동전을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해가지면 어둠이 스민 거실을 더듬어 엄마 아빠가 들어오는 현관 입구 신발장 위의 전구 스위치를 톡 하고 켜두고, 이불을 돌돌말아 쇼파위에서 잠이 들었다. 내가 방에 들아가 잠을 자고 있으면, 엄마 아빠는 그마저도 곤히 자는 아이 잠을 깨운다며 들어와보지도 않으셨으니까. 방에 들어가 자면서 수십날 수백밤을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보았지만 엄마 아빠는 자는 나를 깨워 퇴근길의 분주한 냄새가 깃든 찬 뺨을 부벼주시거나, 거친 수염을 문질러 깨우며 닭다리 한 쪽을 똑 떼주시며 한입을 권하는 일은 해주시지 않았다.
방 밖이 시끌시끌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다음 날 점심이 차려진 소반에는 닭이며 갈비며 줄줄이 비엔나 소세지 등 내가 좋아할 법한 반찬들이 수북히 올라왔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것들은 나에겐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선잠에서 깨어나 방으로 쫓겨가는 내 마음속엔 오직 한가지 바램만이 있었으므로.
때로는 이런 집에 돌아와 이런식으로 우두커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싫어 하교길에 남들은 피하는 봉사활동도 해보고 시험을 일부러 망쳐 나머지 공부반에도 들어가봤지만 그래봤자 내가 벌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일년에 몇 주 뿐이었다.
잠든 나를 깨우지 않으시는 우리 부모님은 평생동안 미래의 한 날 한시에 오늘의 행복을 저당잡힌 채로 열심히 일하셨던것 같다. 입는 것, 먹는 것, 노는 것, 그 외 모든 것 까지 당신들에겐 천원짜리 한 장, 만원짜리 한장의 소비가 문제 였다기 보다는 오늘이 주는 풍요로움을 맛보고 경험하는 것에서 마음가짐의 느슨해짐을 경계하며 평생의 행복과 기쁨을 내일과, 다음 세대와, 다음 번으로 미루시며 살아오셨다. 이젠 빛마저 다 바래어버린 두툼한 칸나앨범 사진속의 엄마 아빠는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넘게 똑같은 코트를 입고, 똑같은 양복을 입고, 똑같은 넥타이를 메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마음이 이해 되어서는 안 되는 어린 나이부터 엄마 아빠가 안쓰러워 착한 아들로, 떳떳한 자식으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서 무던히 애를 썼다.
나는 서운함을 느낀다. 외로움과 고독함이라는 아주 근사하고 고상한 단어로 표현되는 마음이 아니라.
아주 작고, 정말 유치하고, 하찮고, 보잘껏 없는 서운한 마음이 평생동안 사라지지가 않음을 느낀다.
이러한 사람간의 정과 사랑이 기체라면 얼려서 손으로 만져보고 싶고, 액체라면 용기에 담아 마개를 꽉 막아두고 싶고, 고체라면 한아름 들어 그 냄새를 맡아보고 싶다. 예술과 철학에 더 깊게 들어갈수록, 또 인간관계를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동여매는 일 정도로는 이런 마음이 해결되지 않음을 더 잘 알게 될수록 서운함은 더 단단해 진다.
아주 오랫동안 누군가에게 혹은 부모님에게 이 이야기를 담담하고 나지막히 이야기 하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왔는데, 이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내가 울지 않을 자신도 없거니와, 이야기를 들어줄 미지의 청자를 울리지 않을 자신은 더더욱 없어 그 순간을 유예해왔다. 언젠가 그런 서운함이 다행이 저절로 사라진다면 이런 마음은 아무도 몰라도 될 것이고, 사라지지 않더라도 이제는 괜찮다. 하지만 가끔 불쑥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하고, 왜 한번도 나를 깨우지 않으셨는지에 대해 묻고 싶기도 해서 나에게 글을 남겨두려고 한다.
마흔의 문턱을 넘는 12월 노을을 보면서 나는 괜찮음을, 그럭저럭 괜찮아야 함을 다시한번 스스로 다짐한다.